아름다운 여성
20세기 여성운동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한국에 왔다 갔다.
한국기자 협회 초청으로 내한한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칠순을 내다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20대 기자 시절의 빼어난 아름다움과 일에 대한
열정을 적잖이 간직하고 있었다.
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진보적 여성운동의 상징이자 페미니스트 전사인
그는 내한 기간동안 서귀포와 이화여대를 비롯한 각종 매체와의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21세기 여성의 지위와 인권과 세계평화에
대한 접근법을 역설하였다.
나는 예전에 스타이넘의 미모에 반해(20대 기자시절의 사진을 보고)그의
인생유전을 흩어보게 되었지만, 그의 일괄된 세계관과 용기와 일에 대한
열정을 알고 부턴 그를 이상적인 여성으로 흠모하기 시작하였다.
행동하는 양식과 지성을 갖춘 그는, 아직도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자
미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손꼽는다.
60년대에는, 착취와 매춘의 유혹에서 시달리는 바니걸의 실상을 낱낱이
폭로했고, 낙태불법화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대변했으며, 흑인인권운동
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70년대에는, "남자는 기혼,미혼으로 구별하지 않고 남자는 미스터인데, 왜
여자만 미시즈와 미스로 가려쓰는가, 여성도 미스라는 한가지로 쓰자"
는 주장과 함께 미국 역사상 가장 큰 5만명의 여성시위를 조직하며
여성의 의회 진출을 시도했다.
80년대 초에는 보수주의에 밀려 여성운동의 침체기를 겪었지만
세계최초의 여성주의 잡지 "미스"를 이끌며, 꿋꿋하게 일어서
여성운동에 불을 지폈다.
90년대에는,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내부로부터의 혁명"에서
"성 평등운동이 성공하려면 여성내부의 장애부터 제거하고 스스로
자존심을 되살리는 혁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시금 여성들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2000년, 평생 독신을 고수하다 66살의 나이에 5살 연하의 남성과 전격
결혼을 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는, 지난해 5월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발에 남편과 함께 영상메시지를 보내 한국 여성운동가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몇일전, 주한 미 대사관 관저의 환영모임에서
"나를 포함한 뉴욕의 친구들은 "부시"를 "프레지던트"에서 P자를
떼어내고 그냥 "레지던트"라고 부른다며 포문을 열었다. 이어서 그는
"부시는 내가 겪은 최악의 대통령이다"라며 인류 최대, 최후의 제국주의자
이며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전쟁의 화신이자 세계깡패 경찰국가의
조폭두목 전쟁광 부시를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이화여대에서의 인터뷰에서 "여성운동을 하다 겪은 숱한 좌절과 고통을
어떻게 극복했냐"는 질문에 "어떤 것을 하는 것 보다 더 힘든 것은
어떤 것을 하지 않은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은 자신의 적이 된다"
라는 그의 대답이 신선하게 머리에 와 박힌다.
68세의 아름다운 여성 글로리아 스타이넘!
그는 조국의 원죄를 한몸에 떠안으며, 또다시 전쟁을 위한 전쟁을
연구하는 조국으로 의연하게 향했다.
200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