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언어
가차 저널리즘
신아나키스트
2009. 9. 21. 12:20
사회의 집단 관음증이 도를 넘고 있다.
최근 일고 있는 신정아씨 파문(특히 누드사진 게재)은 국민의 알권리를
넘어 한 개인의 영혼까지 발가벗기고 처절히 초죽임 시키야 직성이 풀리는
언론폭력과 우리 사회 반문명의 전형을 잘 보여준 사례이다.
물론 공인으로서 실정법에 저촉되거나 사회지도층으로서의 부적절한
처신등이 있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제도적 제재와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한국의 대다수 주류 언론들은 알팍한 국민의 알권리를 담보삼아
대중들의 관음증과 정치 지형적 불만에 기대어 상업적 목적을 극대화해
나가고 있는 데 문제가 있다.
사건의 본질을 벗어난 신정아씨의 누드사진(합성일 가능성 농후한)을
본인의 허락도 없이 일간지에 게재하여 입체적 긍금증을 증폭시켜
감각적 잇슈로 부각시키고자 하는 일이나,
지난날 대통령 부부의 쌍커플 수술을 도마위에 올려놓고 뭔가 꼬트리를
찾아 볼려고 요리 저리 재단하려는 궁색함도 그렇거니와, 수년전
연예인 홍석천씨의 커밍아웃에 필요이상으로 거품을 물고 지면을 할애
하며 한 개인을 생매장시켰던 지난 일 등은 모두 "가차 저널리즘"의
한 전횡임에 다름아니다.
특별히 사회적 변혁기도 아닌 요즘들어서 "가차 저녈리즘"이
더욱 판을 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너 잘 걸렸어", "딱 걸렸어" .... 정도의 어감인 '가차 저널리즘'
[ gotcha ( I got you 의 준말 ) ]은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언론의 암세포
같은 존재로써 후진 언론환경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 주변에 늘 도사리고 있다.
경쟁이라도 하듯 주류 신문들이 내뿜는 그 자극적이고 역겨운 광기를
순진하게 받아 즐기기엔 이미 그 심각성이 커버린 게 문제이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매스미디어의 건강성과 왜곡을 바르게 걸러내지
못하는 현실에서 대다수 보수언론들의 가차 저널리즘을 차단하기가
쉽지 않은 가슴 뜨거운 사람들의 술상 위에 올린다면 이 또한 기우이고
사치스런 안주일까?
대개의 가차 저널리즘은 언론의 정당한 취재와 본질과는 다른
꼬투리잡기식의 불순한 목적을 겨냥한다. 그리고는 그 정치적 관념적
목적에 접근한다. 일단 쑤셔놓고 난도질 한 다음 "아니면 말고.." 식의
안개를 피우며 책임을 회피하는 속성을 갖는다.
이해관계가 다른 개인과 정적을 공격하기 위한 가차 저널리즘에 얄팍한
기대를 걸기보다 언론권력 내부의 곪고 곪은 종기를 짜는 일에 용기를 갖고
한 발 다가서주길 바란다면 그 또한 순진한 바램일까?( 물론 편집도 안되고
쫓겨나겠지만 말이다.)
조선일보 : 방우영 회장일가 주식보유 90 %
한국일보 : 장강재 " 99%
중앙일보 : 삼성 이건희 회장일가 " 68 %
동아일보 : 김병관 " " 38 %
국민일보 :순복음 교회 " 100%
그리고 신정아씨 누드 사진을 올린 문화일보 : 현대 주식보유 99.6% ...... 등의
주식 보유율이 과연 편집권 독립과 언론의 특성에 비추어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
지배구조인지 부터 일갈 해 보라고 겁쟁이 월급쟁이 기자들에게 주문하고 싶다.
불행하게도 아직 한국에는 퀠리지 페이퍼가 없는 실정이다.
중급지도 없다.(극소수의 정론지가 있을뿐..)
대개가 대중지이며 상업지일 뿐이다. 그것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락펴락하며
곡필을 일삼는족벌언론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대중들을 사회적 관음증에 놀아나게하고, 진실을
왜곡시켜 건강한 상상력을 올가매고 분별력을 무디게하는 것이 우리의
"밭"인 것이다.
자갈밭에서 자란 부끄럼 모르는 해바라기들이 판치는 땅의 새벽은 늘 희미하다.
올 가을 작황을 기대해 본다.
최근 일고 있는 신정아씨 파문(특히 누드사진 게재)은 국민의 알권리를
넘어 한 개인의 영혼까지 발가벗기고 처절히 초죽임 시키야 직성이 풀리는
언론폭력과 우리 사회 반문명의 전형을 잘 보여준 사례이다.
물론 공인으로서 실정법에 저촉되거나 사회지도층으로서의 부적절한
처신등이 있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제도적 제재와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한국의 대다수 주류 언론들은 알팍한 국민의 알권리를 담보삼아
대중들의 관음증과 정치 지형적 불만에 기대어 상업적 목적을 극대화해
나가고 있는 데 문제가 있다.
사건의 본질을 벗어난 신정아씨의 누드사진(합성일 가능성 농후한)을
본인의 허락도 없이 일간지에 게재하여 입체적 긍금증을 증폭시켜
감각적 잇슈로 부각시키고자 하는 일이나,
지난날 대통령 부부의 쌍커플 수술을 도마위에 올려놓고 뭔가 꼬트리를
찾아 볼려고 요리 저리 재단하려는 궁색함도 그렇거니와, 수년전
연예인 홍석천씨의 커밍아웃에 필요이상으로 거품을 물고 지면을 할애
하며 한 개인을 생매장시켰던 지난 일 등은 모두 "가차 저널리즘"의
한 전횡임에 다름아니다.
특별히 사회적 변혁기도 아닌 요즘들어서 "가차 저녈리즘"이
더욱 판을 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너 잘 걸렸어", "딱 걸렸어" .... 정도의 어감인 '가차 저널리즘'
[ gotcha ( I got you 의 준말 ) ]은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언론의 암세포
같은 존재로써 후진 언론환경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 주변에 늘 도사리고 있다.
경쟁이라도 하듯 주류 신문들이 내뿜는 그 자극적이고 역겨운 광기를
순진하게 받아 즐기기엔 이미 그 심각성이 커버린 게 문제이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매스미디어의 건강성과 왜곡을 바르게 걸러내지
못하는 현실에서 대다수 보수언론들의 가차 저널리즘을 차단하기가
쉽지 않은 가슴 뜨거운 사람들의 술상 위에 올린다면 이 또한 기우이고
사치스런 안주일까?
대개의 가차 저널리즘은 언론의 정당한 취재와 본질과는 다른
꼬투리잡기식의 불순한 목적을 겨냥한다. 그리고는 그 정치적 관념적
목적에 접근한다. 일단 쑤셔놓고 난도질 한 다음 "아니면 말고.." 식의
안개를 피우며 책임을 회피하는 속성을 갖는다.
이해관계가 다른 개인과 정적을 공격하기 위한 가차 저널리즘에 얄팍한
기대를 걸기보다 언론권력 내부의 곪고 곪은 종기를 짜는 일에 용기를 갖고
한 발 다가서주길 바란다면 그 또한 순진한 바램일까?( 물론 편집도 안되고
쫓겨나겠지만 말이다.)
조선일보 : 방우영 회장일가 주식보유 90 %
한국일보 : 장강재 " 99%
중앙일보 : 삼성 이건희 회장일가 " 68 %
동아일보 : 김병관 " " 38 %
국민일보 :순복음 교회 " 100%
그리고 신정아씨 누드 사진을 올린 문화일보 : 현대 주식보유 99.6% ...... 등의
주식 보유율이 과연 편집권 독립과 언론의 특성에 비추어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
지배구조인지 부터 일갈 해 보라고 겁쟁이 월급쟁이 기자들에게 주문하고 싶다.
불행하게도 아직 한국에는 퀠리지 페이퍼가 없는 실정이다.
중급지도 없다.(극소수의 정론지가 있을뿐..)
대개가 대중지이며 상업지일 뿐이다. 그것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락펴락하며
곡필을 일삼는족벌언론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대중들을 사회적 관음증에 놀아나게하고, 진실을
왜곡시켜 건강한 상상력을 올가매고 분별력을 무디게하는 것이 우리의
"밭"인 것이다.
자갈밭에서 자란 부끄럼 모르는 해바라기들이 판치는 땅의 새벽은 늘 희미하다.
올 가을 작황을 기대해 본다.
2007.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