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식의 부재
내가 좋아하는 여자, 김선우 시인은 "그들만의 사랑"이란 칼럼을 통해
극단의 도그마에 빠진 한국 개신교의 중병을 소신있게 건드렸다.
예수를 믿지 않은 이들을 '마귀' 혹은 '사탄'이라 적대시하면서도
예수의 사랑을 실천할 길이 없는 그들이, 자신만을 생각하고 제 교회만이
옳다는 식의 신앙으로 흐르게 된 이면엔 한국의 보수 개신교가
"일체의 질문을 잃어버리면서 발생한것이다"라는 요지의 글에 난 이의를
달지 않았다.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 신앙은 믿는자 스스로 우상이 되어 스스로에게 갇히고
극단적 자기애와 독선에 갇혀 결국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소통부재의
중병을 앓게 된다는 요지의 칼럼에 반박 할 수가 없었다.
김선우의 칼럼에 고개를 끄떡이다 퍼뜩 나의 주변을 돌아봤다.
내가 몸담고 있는 "포럼61" ...
엇그제 우연히 9월 초순경에 탈퇴한 어느친구( 정진숙- 멋진걸)가
삶의 사랑터에 올린 탈퇴의 변을 다시한번 읽을 이유가 생겨 뒤져 보았다.
그런데 그 글이 안보인다. 여기를 뒤지고 저길 뒤져도 그 친구의 다른 글들은
다 남아 있는데 그녀가 탈퇴하게된 배경을 섭섭함과 아쉬움 곁들어 올린 간단한
글만 사라져버린 것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 친구가 탈퇴를 한 며칠 후, 어느 친구가 부산.경남터에
올린 "진숙친구가 떠나게 되서 가슴아프다"라는 요지의 글을 뒤져봤는데 그 글도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본인 스스로 삭제했는지 모르겠지만..)
"진숙친구가 떠나게 된 건 우리 모두가 잘못한 탓이야. 너무 안타깝다"라는
내 꼬리글과 함께...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 녀가 탈퇴하게 된 배경에는 모 친구의 지속적인 작업성 쪽지가
발단이 되었던거 같은데, 단순히 개인적인 이유로 탈퇴를 하는 건 자유이며
문제꺼리가 될 수도 없지만(카페내 작업성 쪽지가 사실이라면 잇슈가 되기에 충분함)
그 탈퇴의 글에 꼬리글이 딸랑 3개정도 달렸다는 것과 그 글을 누가 왜 삭제했어야만
했는가에 대해선 여전히 갸우뚱이다.
또한 그 친구가 탈퇴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이해한듯한 또 다른 친구의 글 조차
사라진것을 우연의 일치로 받아들여야 할 지에 대해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꼭 위의 탈퇴 글과 삭제에 대한 사안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잇슈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토론하는 문화를 우리 카페에서
기대하는건 무리일까?
예민한 부분에 대해 아팠거나, 아플 수 있는 일. 또는 비합리적인 사안에 생기면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하기보단, 썩을 수 있는 조직(카페)의 환부를 훤히 드러내 놓고
생산적 토론을 하며 건강한 의견을 주고 받는 꿈을 꾼다면 이 또한 감상적 사치일까?
그런 정서와 환경을 짝사랑 하는 일이 늘 외로워 하지만은 않을거라 믿어보면서도,
듣기 싫은 글을 더 소중히 다뤄주는 성숙함과 아량이 인색한 현실을 비껴가기는
힘들 것 같아 더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스스로, 일체의 질문을 잃어버렸거나, 문제의식 조차 갖지 못하는
죽어 있는 카페라면 더 이상 글을 이을 필요가 없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쓴소리 비숫한 글을 올릴 수 있는 애정이 나한테 남아 있는 건 퍽 다행스런 일이다.
'좋은 게 좋은 거'가 늘 좋을 결과를 가져다 주지만은 않을 것이다.
올 가을 단조로운 콘크리트 길을 산보하기만을 즐기는 친구들보다는,
다양한 낙엽 수북히 깔린 습한 오솔길을 깔깔거리며 걸어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이 보고 싶다.
2008.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