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한 안경
ㅡ 그림 하나 ㅡ
20대 중반의 날씬한 여성이 있다.
이목구비 뚜렷한 미인형인 그녀의 취미는 연애이고,
배우고 있는 운동은 남미의 격투기라 한다.
그녀의 지인에 의하면 그녀가 격투기를 배우는 이유는
"남성을 제압 할 수 있는 무술을 배움과 동시에 격투기 대회
라운드걸로 나가기 위함"이란다.
격투기 대회에서 우승한 최고의 남자들을 소유하고 싶은 속 뜻을
분명히 밝히는 괴짜 여자다.
이 야멸찬 아가씨의 꿈은 온 세상 "섹시한 남자"를 두루두루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꼭 만나고 싶은 '섹시한 남자'의 리스트가 기가막혔다.
"홍세화, 박원순, 진중권, 강정구, 박노자, 강준만..."등이다.
일반 여자의 눈으로는 전혀 잘생기지도 섹시하지도 않은 남성들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그들의 사회적 권력을 사랑한 것도 아니다.
외모도 별루이고 나이 또한 4~50대이지만 그들에게서
"낭만과 감성과 비겁하지 않은 맑은 눈"을 발견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가 그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다.
ㅡ 그림 둘 ㅡ
사십대 후반의 평범한 남성이 있다.
술과 대화를 어색해 하지 않고, 일간지 사설 따위를 조각내서
스크랩하기를 좋아하는 그저 그런 남자이다.
밥만 먹는 여자보다 밥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여자를 좋아하는
그에게도 나름대로 매력을 느끼는 여자들이 있다.
김정란, 정희진, 김선우, 최현숙, 마스다 미야꼬, 글로리아 스타이넘...
하나같이 신념과 순수와 열정과 행동하는 양심을 가진 40~70대의 향기로운
여자들이다.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고민할 줄 아는 그들..
밥숟갈에 하늘 구름 낙엽 바람 그리고 의식(?) 가득 얹고 맛나게 먹을 줄
아는 섹시한 여자..
올 가을에 꼭 만나보고 싶은 여자들이다.
ㅡ 그림 셋 ㅡ
황금들녘 나락 쪼아먹던 까마귀 한무리
까악까악 하며 퍼덕거리는 시각.
회색도시의 한 모퉁이 포장마차 비숫한 따끈한 공간.
영혼고운 섹시한 여자와 보통으로 맛있는 중년 남자의 파닥거리는
그림자가 밖으로 새어나온다.
세상이 만들어준 미인 미남이라는 파쇼적 규정을 거부한 사람들.. 그들은
말이 없어도 말을 한다.
가슴이 떨어져 있어도 투명히 관통한다.
밥보다 술을 더 맛있게 먹는 족속들은 술 잔 부딕치는 소리마저 이쁘다했던가.
하얗게 질주하는 가을 밤..
주황색 비닐포장 밖으로 내비친 어울림의 미학.
고장난 시계를 뒤로한채 사십오도 각도로 쳐올라간 소줏잔의 합창소리가 쨍쨍하다.
그 호흡에 놀란 섹시한 까마귀 한 마리..
빼꼼이 고갤 내밀고 한마디 내밷는다.
" 나도 낑겨줘. 쓰발 ~"
200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