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나키스트
2009. 10. 10. 19:35
비다.
대각으로 뿌려대는 날쎈 비가 아니고
수직으로 후두둑 닥딱 쏟아지는 그야말로 내가 갈망하는
정직한 장대비였다.
때는 가을이라 해두자. (가을남자라서)
장소는 나도 모른다.
(울산 변두리 계곡 끝자락에 자리잡은 가든이라 해두자.)
작정하고 찾아간 농원 마당 넓은 뜰엔 토종 잔디가 바다 같이 깔려있고
구석구석의 큰 팽나무 아래엔 무인도 마냥 아담한 평상이 여럿 놓여있다.
지붕을 초가짚으로 엮은 두명 남짓한 평상에 중후한 사십대 두 사람이
마주앉아 비의 친구가 되기로 작정한다.
거침없는 빗줄기의 가락에 취하고, 우정과 인간의 정에 취한
두사람은(혹은 네댓명은) 취하는 줄도 모르게 취하늘걸 즐기며
표주박으로 좁쌀동동주를 따른다.
먹음직스런 해물파전이며 미나리가 섞인 도토리묵은 장모님이 해주신것
만큼이나 맛있지만, 역시 최고의 안주꺼리는 '시원스런 빗줄기와 뜨거운
친구의 가슴과 투명한 대화'이다.
앞에 앉아있는 친구가 남자이니 여자니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어떠하랴.
빗줄기 안주삼아 동동주(소주)를 주고 받으며 팍팍한 세상과 인생을
맛있게 삼킬수 있는 순백한 영혼이면 된다. 내면이 아름다운 향기로운
사람말이다.
" 나의 상상력에 문제가 있다고?", " 너무 허황된 꿈이라고?...."
웃기지마라! 난 이런 꿈을 꿀 자격이 있는 놈이다.
왜?.. 내 영혼은 경쟁력이 있기때문이다.
지겨운 이 찜통더위를 후딱 넘기고, 수줍은 새각시 볼 마냥 잘익은 낙엽을
사정없이 때리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오늘과 같은
섣부른 꿈을 꿀것이다.
사람내음 좋은 가슴따뜻한 친구와 술잔 부딕히는 꿈아닌 꿈 말이다.
2008.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