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언어

초경

신아나키스트 2009. 10. 12. 22:05

 

 

햇살 고운 어제는 작정하고 낮잠을 즐겼다.

그제 밤..초가을 기운 얹고 친구와 5차를 거치고 새벽에 들어온 몸이라

꿀잠이 따로 없었다.

한참 달콤한 꿈속을 헤메이는데 딸아이의 요란한 소리에

결정적인 즐거움(?)이 산산조각 나 버렸다.

지금까지 들어본 외침중에 가장 위급하고 놀라는 듯한, 그러면서도

흥분된 기쁨을 내포한 아빠부르는 소리..

"아빠! 아빠! 아빠 !! ... "

로또복권에 당첨된 듯 엄청난 고함을 지르며 내 방으로 달려든 아이.

"아빠! 나 생리 나왔어." ,  "선물..."

갑작스런 딸아이의 초경  소식에 팬티 주어입고 반바지 걸치고 허둥지둥 일어나

"어, 그래?" , "축하해 다현아 정말 축하해" 하며 꼬옥 안아줬다.

그리고는 내 딸아이가 소리치며 기뻐했던 게 첫 생리를 반견한 것 때문이란걸

알기에 곧바로 딸아이가 원하는 선물을 줬다.

꽃보다 현금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여러장의 지폐를 꺼내주니 얼굴에

초경보다 이쁜 꽃이 함박으로 피어올랐다.

 

 

띠방 카페의 친한 친구들끼리 산행을 떠난 아내의 빈지리가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내의 화장대 위를 뒤지니 생리대는 안보이고 라이너만 몇 개 나뒹근다.

딸아이에게 쬐그만 라이너를 보이며 테잎을 떼고 팬티에 붙이라하니

너무 작아서 잘 안된다고 가져왔다.

다시 옷장의 다른 서랍을 뒤지니까 한무더기 생리대가 튀어나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능숙하게 시트를 떼고 "요 쪽을 팬티 안쪽에 부착해서

사용하라" 일러주니 제법 잘 착용하는듯 했다.

"어때?" 

"응, 좀 불편해"

"이젠 다현이도 성숙한 여자도 새롭게 태어났으니까 더 이쁘고 건강하게 자라야 해? "

"네~"

 

 

아내한테 문자를 쳤다.

"다현이 생리 시작했어. 축하해줘..."

수신이 잘 안되는지 한참만에 전화가 왔다.

"자기야 지금 나가서 다현이 선물로 솟옷 셋트(85,75A) 하고 꽃다발 사다주세요."

"그리고 생리용 팬티 2개하고.."

"으응 알았어"

 

 

초등 4학년인 아들이 가만히 지켜보니 우리집에 무슨일이 생겼는지

"아빠, 왜 그래? 뭔 일 있어? ...

누나한테 왜 돈 줘?"

"으응 누나가 생리를 시작했어. 이제 누나도 많이 컷다는 신호야."

"그럼, 난 뭐하면 돈 받아? "

"어.. 지산인 키 170 센티되면 선물줄께. 알았지? "

"네에 ~"

"그런데 아빠 생리가 뭐야?"

"아, 그 거.. 여자들이 어른이 되면 한달에 한번씩 치르는거 있어."

동생 하는 말...

"에이~ 찝찝해. 앞으로 누나랑 안놀아! "    ^ ^

 

200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