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나키스트 2009. 10. 26. 21:35

 

노란 우편물을 뜯었다.

한달에 한번씩 배달되는 정기간행물.

표지의 ''2009 국제앰네스티 연례보고서'란 굵은 고딕체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흥미로움을 주지 못한다.

늘 건조하고 답답하다는 느낌..

그렇지만 읽지 않고는 긍금해지는 어두운 구석의 소식들을 숙제라도

하는 기분으로 넘기긴 넘긴다.

 

한 장 한 장 ..

중간 쯤 넘기니 하얀 가면을 쓴채 노란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하는일단의 젊은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손에 든 문구는,

Burma,  Congo, Ethiopia, Bangladesh ......

이 때 까지도 난 그들의 퍼포먼스가 뭐를 알리기 위함인지 몰랐다.

밥만 먹고 똥만싸는 내가 오늘(6/20)이 세계난민의 날이란 걸 기억할리가 없다.

청바지에 까만색 국제앰네스티 티셔츠를 입은 그들의 눈은 써늘한 가면을 압도했다.

무언의 시위는 엄숙하고도 고요했지만  그들이 내뿜는 언어는 태양만큼 뜨거웁다.

반짝거리는 수백의 눈속에서 '아름다움'이란 공통어를 찾아내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저것이다.

착한 소주보다 아름다운 눈.

내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내가 닮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영혼이 있는 저 눈들 앞에 누가 영혼이 실종된 세상이라 함부로 말하는가.

 

국경을 넘어 인권과 박해의 사각지에 몰린 어둠의 자식들의 아픈 곳을 굵어주고

막힌 혈을 뚫어주는 희망스럽고 건강한 저 눈들에게서 나는 무한한

부채의식을 갖을 수 밖에 없다.

같은 소속의 회원이면서 회원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나.

난 그들이 있었기에 가느다란 나의 숙제를 외면할 수 있었고

부끄러워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뻔뻔스럽게도 내가 맑지도 못하면서 맑은 영혼을 탐낸다.

이점에선 누구보다도 이기적이다.

꼭 저런 눈이 아닌, 평범한 농부일지라도 통속의 때가 덜낀 향기로운 영혼에 군침을

흘린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 눈, 내 가슴과 비숫하다거나 의식, 정서의 주파수가 나와 고만고만하면 소통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난다.

20여년 후 눈이 침침해질 나이에도 친구랑 걸쭉히 막걸리 닦으며

막걸리보다 혼탁한 세상을 정면으로 세차게 내동댕이 치는 시력(?)을 가진 꿈.

그런 꿈을 꾼다.

짬뽕같은 ..

 

 

 

2009.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