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언어

땡초주

신아나키스트 2009. 12. 31. 00:10

 

40대의 마지막 겨울이라서 그런가?

빽빽한 가슴에 밀려드는 한줄기 바람의 무게는 어제의 그것이 아니다.

새로운 세대를 받아들여야 하는 떨림에 앞서, 더 완성도 있게 세상을

요리할 수 있다는 흥분과 기대가 소줏잔을 꽈악 잡게 만든다.

 

때깔 좋은 사십대 귀신으로 남고자.. 크리스마스의 설레이는 연휴를 위해

5일간 술잔을 잡지 않았다.

12월 25일...

역시 서로의 각본에 의해 몇일간의 금주로 몸을 탄탄히 다진 아내와

폭탄주의 거리로 나섰다.

일식집에 무룹을 내리자마자

전복, 산낙지, 소라, 회...그리고 소주 3병이 달콤히 혀바닥에 달라붙었다.

 

교과서대로 움직이기 위해 일찍 1차를 털고 나의 단골 선술집으로 옮겼다.

과메기 안주를 시켜놓고 아내에게 친구를 불러서 같이 한잔하자고 하니,

폰에 입력된 번호를 눌러주면서 나보고 통화하라 건넨다.

여자친구의 목소리인줄 알고 기분이 좋아지던 그 친구,

느닷없는 남자의 목소리에 "어, 형님 웬일이세요?"

'어, 지금 경희랑 시내에서 술 한잔 하는데 일루 나올 수 있어?'

"아~ 예, 좋죠.. 지금 가족들이랑 외식중인데 금방 마치고 달려갈게요 ^ ^ "

 

과메기 안주가 나오기  바쁘게 정말 총알같이 날아온 두 사람..

잘생기고 가슴 투명한 아내의 남자친구와 그 남편 못지않게 어여삐 순수한

그의 아내가 방긋 웃으며 나타났다.

아내의 띠방 카페친구인 그와, 그의 아내와는 한두 번 술자리를 했었기에

이번의 만남은 더욱 화기애애하게 소줏잔을 돌렸다.

 

한 해의 행복한 인연들을 술잔에 얹을 즈음 그 친구 아내의 폰에서 문자가

들어왔다. "동호회 모임의 남자회원 몇명이 근처 술집에서 송년회를

하는데 참석할 수 있냐"는 내용이다.

내가 끼어들었다.

'와~ 남자들?' ..

'멋진 사람들이예요?' 물으니

"네, 변호사랑 사장님 몇 분이 오셨다네요"

'그래요? 그럼 우리 경희도 함께 데려가줘요.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게..'

" 정말요? 그래도 돼요?"

'그럼요 좋은 자리인데.. 술이나 많이 따라줘요..'

 

두 여자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이심전심, 의기투합, 눈이 반짝반짝.. ^ ^

너무 좋아 어쩔줄을 몰라한다.

일부러 술자리를 빨리 끝냈다.

거리로 나와 그녀들과 화이팅! 을 외치고 우린 우리의 갈 길을 바삐 갔다.

내가 좋아하는 스탠드빠로 자리를 틀고 못다한 이야기를 밷어내며

주거니 받거니를 두세시간 하고 있으니 3차에서 합류하기로 한 그녀들이

거나하게 취한 모습으로 의기양양 들어선다.

 

'재밌었어?'

'술은 뭐했어?'

"어, 땡초주라고 소주에 매운 고추를 잘게 썰어서 섞은 술 마셨어"

'얼마나?'

"응, 한 병 정도.."

 

계속 주거니 받거니.

넘치는 정.. 돌리는 술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를 느껴갈 즈음

자리를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누라 친구의 아내가 취기가 있는지 의자 뒤로 목을 기대는 횟수가

많아지는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대리운전을 부르고 집근처까지 오는데 아내가 창문을 내리고는 얼굴을

내민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토해댔다.

평소 나보다 술에 강한 사람이 그 정도 마시고 토해대다니...??

집에 들어와서도 침대에 뻗고 누워 해롱 해롱~~

참 이상도하다.

왜이럴까 이사람..?

 

"땡초" 때문이었다.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든 그 땡초주 한 병에 소주 여러병..

거기다가 짬뽕까지 했기에 넉다운 되고 만것이다.

 

다음날 ..

늦게까지 낮잠을 즐기는데 아내의 폰으로 어제 그 친구의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연극 티켓 2장 (룸넘버13) 구해놨으니 남편이랑 빨리 이쪽으로 와서

자기를찾으라는.."

예술회관에 근무하는 그녀가 남편 친구의 쓰린 속을 해장시키기 위해 마련해준

해장국보다 따끈한 티켓 두장에 뽀오~~ 를 날리며 시동을 걸었다.

아듀! 20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