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언어

이상한 음악회

신아나키스트 2010. 3. 9. 20:42

 

 

음악회에 다녀왔다.

해마다 울산의 모 신문사가 주최하는 '신년 음악회'..

올해도 아내의 남자친구가 보내준 배려(티켓)덕에 갈증을 풀 기회가 생긴것이다.

공연장으로 가는 길은 늘 설레인다.

오늘은 어떤 맛꺼리를 풀어낼까?

 

무대에 조명이 모아지기전 나는 제일 먼저 객석 점유율에 관심을 두는 편이다.

그리고는 공연시작 시간을 제대로 지키는지와 관객들의 표정을 훑어 보는

것으로 그날 공연의 질을 미리 점치곤 했다.

 

아내의 팔목을 보니 공연시작 시간인 7시30분 을 가리킨다.

로얄석 일부만 빼고는 대부분 객석이 들어찼는데도 공연시간이

미루어지는 게 영 맘에 안든다.

서서히 음악회에 대한 기대감이 빠져나갈 즈음,

일단의 무리들이 함박 웃음을 터트리며 들어섰다.

어디서 간간히 본듯한 통속의 얼굴들..

지역 정치인과 그 지망생들이다.

 

제일 늦게 와서 가장 탐스러운 자리에 앉은 그들.

앞,뒤 주변 사람들에게 허리 구부리고 악수를 하며 소란을 피워대는 모습이

천연덕스럽다못해 우스꽝스러웠다.

주객이 전도된듯한 어수선한 분위기는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했다.

한참을 자기네 안방에서 노니는 듯한 분위기를 거치고 나서야

무대 위 오케스트라에 조명이 내리고 오페라 서곡 '카르멘'이

웅장하게 연주됐다.

 

그런데 첫 연주가 끝나자 느닷없이 사회자가 나와 내빈들을 소개하는것이다.

(클래식 공연장에 웬 내빈소개 ?? ㅎㅎㅎ..)

느지막하게 들어와 명당자리에 앉은 그네들이 소개되자

기다렸단듯이 한 명씩 일어서서 권투선수가 인사하는거와 같이

각 방향으로 굽신거려대는 것이 무척이나 악상블(?)스러웠다.

 

국회의원 모씨(모 정당 시당위원장), 각 구청장(5명) 시의회 의장...

여기서 끝냈으면 덜 개그스러웠을텐데 곧 바로 6.2 지방선거

예비 출마자 인듯한 인사들이 차례대로 소개되어진다.

(울산)평통자문위원회위원장, 라이온스클럽 지회장, ○○가스 대표,

한국노총 지역본부장... 등등 모두가 특정 정당의 인물들이다.

 

갑자기 머리속에서 혼란끼가 돋아났다.

내가 문화 공연장에 온것인지, 모 정당의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출정식에 초대받아 온 것인지 의아스러웠다.

타임캡슬을 타고 80년대로 뒷걸음 친듯한 느낌이란 게 이런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전방위적으로 불어닥친 퇴행의 단면을

보는 듯해 공연내내 씁쓸했다.

 

공연장 로비에서 한복 입은 여성들이 서비스하는 떡을 맛보는 시민들은

그 달콤함의 주소를 아는지 모르는지

서로 앞다투어 떡판대 앞에 줄을 서는 무감각한 모습에 연세드신 어머니

모습이 떠올라 서글펐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난 오늘 아침.

지방 조간신문에 찍힌 활자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 지방선거 여론조사 조작시도 금품수수 ! " ..

모 정당 예비 출마자들이 돈을 모아 여론조사를 유리하게 하고자

지역 일간지(신년음악회를 주최한 신문사)에 금품을 제공한 정황이

드러나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기사다.

 

그들의 커넥션과 이상한 음악회가 아무 연관이 없으리라 믿으면서

나는 오늘 아무 꽃집이나 들어서,

가장 거짓말 안 하는 향기를 지닌 장미송이 여럿을 준비하고 싶다.

연민의 정을 느끼는 천박한 가슴에 전하기 위한.

그리하여 봄의 정직한 맛을 느끼기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