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언어

비자금

신아나키스트 2010. 4. 24. 16:00

 

직장인들의 딴 주머니는 쩨쩨하다.

년,월차 수당이나 성과급의 일부, 혹은 연말정산 환급금 정도가

그 출처의 전부.

그러다보니 유사시에 화력(?)을 갖추기엔 턱없이 얄팍한 게 현실이다.

비자금은 고사하고 술값 뒷처리를 땜질하는 별도의 현금서비스 계좌를

두고 있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푸념들도 쏟아진다.

거기에 비하면 여태껏 비자금에 대해 무감각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나는

복된 남자인지도 모른다.

 

딴주머니를 차는 남자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삐딱했다.

서로의 신뢰와 자존감을 훼손시키는 모종의 작업이 영 마뜩치 않아서다.

그런데, 갸날픈 유리봉투를 쪼개어 뒤탈 없이 처리하는 고수들에게

동정심을 보내왔던 나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뒤늦게 그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와서 비자금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걸 후회까지 하며

통속의 대열에 합류한 이유는 뭘까?

 

꿈 때문이다.

자그마한, 그리고 설레이는....

사실 "아내의 작은 가슴을 키워주기 위한" 소박한 꿈을 키워온 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막내 출산 후 대중목욕탕을 거의 찾지 않고 외출때는 라이너를 두툼이

끼워넣는 아내가 안스러웠다.

그보다 더욱 연민스러운 건, 꿈꾸는 것 조차 주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강한 여자가 품을 수 있는 꿈.

위험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이쁘게 그려낼 수 있는 분홍빛 상상력과

일말의 가능성마저 봉쇄당하는건 슬픈일이다.

혹, 아내가 말못할 콤플렉스로 인해 꿈의 날개를 파딱거리지도 못한 채

설레임의 문턱에서 기필코 꺾이고야 만다면 이 얼마나 우울한 일인가.

 

착한 여자도 꿈 꿀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상상력은 결코 빈약하거나 위험하지 않다.

아내가 꾸는 꿈이 제도권 밖의 그리움이든 현실성 있는 감정표현이든,

아니면 남편한테 미안스런 이쁜 비밀이든, 원천적으로 꿈꿀 수 없는 것보단 

백배 낫다.

물론, 원초적 꿈 따위를 후순위로 밀어 놓고도 남을 "자기만족의 기쁨과

자신감 회복"이 내가 바라는 가장 큰 희망사항임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어제..

새로 선물한 원피스를 입은 아내의 뒷태가 또렷해서

앞 선도 좀만 더 활화산이었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에 한마디 던졌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가슴 키워줄 게! "  했더니,

지금껏 괜찮다며 사양하던 아내의 답이 의외다.

"좋아. 그대신 당신 용돈으로 해줘"..

그렇게 해서  아내 가슴키우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고 비자금 조성에도

발동이 걸린 것이다.

 

넷 세상을 뒤져서 낙찰한 기본꺼리.. 코젤, 275 cc, 500~700만원..

이 견적 앞에 미소 짓기 위해서는 새벽까지 걸치는 술자리의 시간과

횟수를 줄이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 2년 정도 나의 낭만을 스그러뜨리면 아내의 자신감을 회복시키기에는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엽전들이 들으면 허접스런 꿈일망정 내가 꿈꿔야 할 이유 외적인 이유와

타협할 이유는 없다. 

 

꿈꾸는 남자가 행복하고, 못 꿀 꿈이 없는 여자가 행복하면 그만이다.

나의 비자금에 붙은 탄력이 터져,

한입에 쏘옥 들어오던 귀염밭이 개간되는 날.

그날은 명절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