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
남들보다 일찍한 결혼도 아니면서 아기 갖는 일에 무관심했던 시절이
있었다.
"결혼은 곧 출산"이라는 등식이 맘에 들지 않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신혼의 달콤함을 충분히 더 오래 즐기고자 하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이다.
2년 정도 산아를 제한 하기로 했다.
결혼생활에 있어 "꽃과 향기(?)는 필요하지만 유전자를 잇기 위한 열매는
선택이다" 라는 게 나의 결혼관이었으니 퍽 자연스런 결정인 셈이다.
2년이란 시간은 금새 지나갔다.
내 나이 서른네 살이 돼서야 산아제한 계획을 풀었고
임신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임신 2개월로 접어들 무렵 직장동료 부친상이 있었는데..
금기시하는 속설을 알고 있으면서도 조문을 가려고 하자
주변사람들이 말렸다.
부인이 애를 갖은 시기에는 그런 자리에 가는 게 아니라나 뭐라나.
속으로 코웃음이 나왔다.
"무슨소리.. 아내의 임신과 남편의 조문이 무슨 상관관계냔 말이지.."
내가 젤 싫어하는 그 비과학적인 미신에 단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조문을 다녀왔다.
며칠 후.
근무중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OO병원 산부인과인데 OOO씨가 유산되어 입원했다"는...
한걸음에 달려가 눈물흘리고 있는 아내를 토닥거려주고 3일 후
퇴원하고는 다시 자연스런 일상으로 돌아왔다.
근데, 이후부터 임신이 안되는것이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다 돼가는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린 담담했다.
뭐, 선택사항 정도인데 뭐...^ ^
지인들의 불필요한 인사만 아니면 전혀 문제꺼리는 아닌데 주변의
요란스러움이 가끔은 부담스럽게 다가올 때도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 한번은, 왜 유산이 됐을까에 대해 생각해봤다.
상가집에 다녀왔기 때문??? ..
ㅎㅎ 이 터무니 없는 OO 탓에 의심을 품는 것 조차 나는 허용하지 않았다.
그건 나를 지탱하는 큰 줄기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산에까지 이른 건, 당시 아내의 노동강도와 건강, 그리고 체내
임신환경의 문제, 혹은 나의 조심스럽지 못한 애정행각 때문이지
왜 사람 사는 곳에 가서 예의를 다한 탓이냔 말이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그런 속설과 @@ 탓 타령..
그런 건 이미 나의 적수가 못됐기에 되돌아 볼 필요조차 없다.
그로부터 2년 후, 어렵사리 임신에 성공했고 10개월 동안 두번의 조문 기회도 맞는다.
망설임 없이 다녀왔다.
천년 묵은 비합리와 개념없는 눈초리들을 뒤로 흘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