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은 마녀가 아니다?
사건 하나.
우리 옆 동네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이다.
출근한 남편이 잊고 간 무언가를 가지러 집으로 돌아왔는데, 방 안에서
마누라와 반려견이 밀착되어 육욕을 불사르는 것을 봐 버렸다.
예기치 못한 남편의 출현에 화들짝 놀란 아내는 자신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수캐를 떨치며 몸을 일으켰지만 어찌된 일인지 개의 그것과 분리가 되지 않았다.
당황한 남편이 둘을 떼어놓으려 별 방법을 써봤지만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어
결국 119를 부르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산부인과로 이송되어 개를 안락사 시키고 복잡한 수술을 거친 후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사십대 후반인 그 여성은 곧바로 집을 나가고 말았다.
사건 둘.
최근 서울의 모 중학교에서 벌어진 임시직(기간제) 여교사와 중3 남학생과의
성적 접촉이 방송과 신문을 필두로 인터넷 카페와 토론방을 넘어 동네 찜찔방과
남, 여 술자리의 안주꺼리로까지 번지고 있다.
여교사에 대한 마녀사냥은 당사자에게 그치지 않고 그녀 남편의 개인정보까지
인터넷에 유출시킴은 물론, 그녀의 남편에게 "마누라를 간통제로 고소하여 구속시켜라"며
가족들에게 살인적 고통을 가하고 있다.
사건 셋.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2007년 두 번째 부인인 세실리아와 이혼하고
곧바로 새 연인인 카를라 브루니와 만나 결혼을 하였다.
전 영부인(두번째 부인)세실리아는 사르코지가 자신의 결혼식때 사회를 봐준 인연을
계기로 서로 눈이 맞아 불륜관계를 지속해오다 각자의 배우자와 이혼을 하고
합친 케이스다.
두 번째 영부인(셋째부인) 카를라 브루니는 남편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 동거를하다
둘 사이에 아들까지 낳은 상태에서 사르코지를 만나 결혼했을 뿐 만 아니라, 알몸 누드
까지 찍어 고액을 받고 팔았다.
현재 사르코지 대통령과 브루니는 서로 또 다른 상대와 맞바람을 피우는 상태다.
최근 한국사회에 만연한 마녀사냥이 도를 넘은 지는 오래다.
정치적, 이념적 성향이 다른 특정인에 대한 치졸한 괴롭힘을 넘어 이제는 일반인의
사적 영역으로까지 융단폭격하는 양상은 우려를 넘어 소름끼치게까지 한다.
그 단초를 제공하는 배경에는 정보 수요자의 의식레벨과 속물적 감각에 편승한
대중매체들의 무분별한 상업적 의도와 시장점유 경쟁의식이 깔려있는 측면도 있겠지만,
자기만 고상한척하며 도덕적 약자에게 집요하게 내던지는 저질 돌멩이들의 주소와,
시중에 뜬 먹이를 확대 재생산해내는 단세포들의 근질근질한 관성이 더 크게 작용
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남편과 자식을 둔 여성이 동물과 성적 유희를 가졌다면 손가락질 받아 마땅하고 본인
또한 상당한 수치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또한 학생들에게 인성과 삶의 좌표를 바르게
가리켜야 할 교육자가 어린 제자를 상대로 성적 탐닉을 실천하는 행위는 어느 문화권을
막론하고 비난 받아 마땅하다.
위의 두 일탈행위 모두 사회적 규범과 상식을 벗어난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무개념한
마녀사냥의 대열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
상황을 바꾸어 남성이 암캐와, 남자교사가 여학생과 성적 관계를 가졌다면
이토록 광활한 마녀사냥터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화살촉 또한 무디어 졌을지 모른다.
일방의 시각에서 벗어나 여유를 부려본다면,
첫 번째 사건은 수간을 저질렀지만 타인에게 직접적 위해를 가하지 않은 은밀한 또는
극도의 호기심과 특별한 쾌락추구에서 벌어진 돌출적 행동이었고,
자극성 강한 두 번째 사건은 누가봐도 비도덕적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일탈행위로,
몇 몇 국가에서와 같이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형벌을 받아도 죄를 면하기 부족하지만,
수간도 강간도 원조교제도 아닌 스스로 제어하지 않은 욕망으로의 분출과 다름 아니다.
이 대목에서 딴지를 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동전 양면에 투시된 배경과 현상을 냉정하고
균형있게 바라보는 데 인색한 사회는 결코 건강 할 수 없다라는 나의 생각을 되돌려 놓고
싶지 않다.
불안전한 인간이 갖는 상상력과 행동은 가끔 엄청난 확률게임과 직면하게 된다.
위의 사건 셋 중에 "그 주인공이 백퍼센트 나 자신은 아니다"란 가정이 주어진다면
난 자신이 없다.
존속살인, 강간, 테러, 자살, 금지된 사랑...
고백하건데 나는 초등학교 1학년(만7세)때 눈부시게 고운 담임선생님을 사랑하였고
선생님을 여자로 느끼며 감각적 본능에 대한 망상까지 가졌었다.
철없는 아이의 이 해괴 발칙한 연모의 정이 여교사와 성적교감을 갖은 중3 남학생의
소설 같은 사건보다 더 성숙되어 있다거나 죄질이 약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초등학생인 나도 그 당시 선생님을 진정으로 사모했는데, 사춘기 빛 충천한 그
열여섯(우리나이) 남학생은 선생님과 전혀 정신적 교감이 없었던 것일까?
아쉽게도 이에 대한 담론이나 토론은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첫 번째 두 번째 사건의 여성들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연민의 흔적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참으로 빈곤한 상상력이고 뻣뻣한 입김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원초적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약점에 노출되어 있지 않을까?
종이 반장 차이에 불과한 행동과 안행동의 차이가 낳은 충격과 파란은 인간에게만
주어지지 동물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가십거리를 포착하면 거품 물고 마녀사냥에 합세하는 능력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현직 대통령 부부의 맞바람과 불륜 스캔들을 지켜보는 프랑스의
매스미디어와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놀랍게도 그들은 너무도 차분하고 조용하였다. 아무리 대통령이더라도
"개인의 사생활에 관섭하지 않는" 불문율과 성숙된 문화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한국이었으면 어땠냐 고라고라?
ㅎㅎ 과거 故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현직 때 눈 위 피부가 늘어져서 쌍커플 수술
한 것을 두고도 주류 신문들이 돌아가면서 난타를 가할 정도였으니..
탄핵이니 하야니 하는 요구는 기본일 정도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지 않았을까싶다.
엊그제 미국에서 출장 온 친구에게 물었다.
“이담에 늙으면 고국에서 살 생각은 없어?”..
이런 답이 돌아왔다.
“예의와 상식이 없는 한국에는 살기 싫어” ...
아무 변명할 수가 없었다.
그저 가슴만 끄떡 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