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언어

알로카시아

신아나키스트 2009. 10. 31. 10:32

 

동트지 않은 새벽..

알로카시아가 무너졌다.

끔찍이 아꼈던 나에 아열대 친구.

내 허벅지 만한 굵기에 3.5 미터나 되는 너의 장대함은

나의 자존심이었고 침묵을 즐기지 않은 나에 벗이었거늘.


우산만한 잎줄기 몇개가 그리도 버거웠단 말이냐.
스스로의 무게에 못이겨 우지끈~ 꺽인 모가지에서 넘쳐흐르는

수액은 어찌 그리도 지난 봄날 거리의 눈물과 닮았느냐.

 

식물원을 쇼핑하다 삼십만 원 주고 반강제로 훔쳐온 너와의 만남은

참 행복하였네라.

거실 한구석에서 싱싱싱 눈맞춘 지난 3년.

나에게 산소를 주고 희망을 주고 미래의 동반과 사색의 교감을

주고받았던 너.

 

너의 그 푸릇푸릇한 기개가 아직도 집 안 가득 뻗쳐 있건만

반동의 시대에 바보 같은 대나무가 무참히 밟힌것 처럼,

야만의 시대에 들풀이 허무히 누인 것 처럼

유방 같은 천정에 아슬아슬 키스하던 너 조차 느닷없이 그렇게

꺽이고 말았구나.

 

쩌벅 쩌벅.. 가을이 걸어오는 소리 들리느냐.

또다시 잔인한 계절이 오면 나는 어찌 견디란 말이냐.

너의 향수를 끄집어내랴?

술을 불러오랴?

인문학의 죽음만큼이나 무감각한 막장 사회에 알로카시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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