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언어

가을에는 꼼장어도 줄을 선다

신아나키스트 2009. 9. 20. 15:51

 

석쇠에 뉘인 꼼장어를 봐라.
시뻘건 양념을 두껍게 쳐발린 갸나린 몸매가
굶주린 나를 꼬셔댄다.
요염한 자태로 꼬불꼬불 춤까지 추어대는
그 모양이 발칙하다 못해 처량하기까지하다.


앗 뜨거! 앗 뜨거!
하지만 인정사정없이 가위로 싹뚝 싹뚝 짤라댄다.
그리곤 파트너와 소줏잔을 높이 들어
뭔지는 모르지만 무조건
위하여!


부춧잎에 가을 향을 얹었다.
마늘에 된장 찍고는 잘 익은 놈 한토막 골라 씹었다.
그리곤 다시 소주 한 잔 쨍!
저절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
캬~아.....


그렇게 토요일의 가을밤은 익어가고
양철 원탁자 위 소줏병은 늘어만 간다.
똥집이 흐뭇해서인가?
아님, 혈관속에 가을향이 가득 퍼져서인가?
착한 여자와 나는 연기 자욱한  꼼장어집을 나와
조용한 카페로 걸어갔다.


늘 찾던 하얀 파라솔 원탁에 앉아
블렉러시안으로 입술을 젖시니
가을은 차분하게 심장으로 와
머리에 꽂힌다.


가슴이 시키는대로 카페를 나와
단골 호프집으로 향하는건 책에 나온 코스?
아내와 여주인과 가을남자, 셋이서
주거니 받거니...
어느새 병맥이 두자리 숫자를 넘본다.


1시 30분...
적당한 시간, 적당한 술기운이 4차를 외쳐되는 것도
가을탓인가?
대리운전을 부르고 아내와 함께
물좋기로 소문난 뚜껑(지붕) 열리는 나이트클럽으로 부웅~.


그런데 이거 웬걸.
오늘따라 나이트클럽 입구에 이삼십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를 하고 있슴이다.
오잉?
이시간에, 이 불경기에..


꼼장어가 S라인을 뽐내는 듯이 줄선 어떤 쏠림 앞에

몸안에 축적된 가을향기가 싸~악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아저씨! 그냥 갑시다.
연암동으로요..

 

200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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