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은 늘 갑갑하다.
지난 겨울에 건 막연한 기대가 함량 미달인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게눈 감추는것보다 빠른 세월의 칼날이 가슴을 그엇기 때문이다.
봄은 반기지만 너무 빠른 계절 바뀜이 맘에 안든다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오십을 앞둔 중년 남자가 세월 앞에 초연해지기란 쉽지 않다.
나이에 대한 개념을 내던지기엔 너무 젊어버린 것일까?
아니, 그렇지도 않다. 거울 속 낯선 남자의 주름살은 이미 오십을 넘기고도
남음이 있다.
거꾸로 가는 감성과 세상을 잘 삶아 먹을 줄 아는 내면의 무기가 없었다면
그 남자는 아마 초라한 사색의 오솔길을 휘청거리며 걸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 남자에게도 남들보다 떨어지지 않은 보석이 여럿 있다.
초등6년, 4년된 딸과 아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여섯 살 아래인 어여삐 착한 아내 또한 무엇보다 빛나는 보석임에
틀림없다. 주머니에 담고 다닐 수 있는 그런 보석들이 있기에
지난 겨울, 쌩~ 하고 가슴을 강타하는 매서운 바람이나 눈썹을 어지럽히는
세월의 무정함을 막아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또다른 먹거리를 찾았다.
삼산동(울산) 골목어귀에 참치전문 술집이 그것이다.
스탠드 탁자에 앉아, 주방장의 설명과 곁들어 바로바로 썰어주는
싱싱하고 다양한 부위의참치를 참기름과 겨자를 발라 김에 올리고 여러
풋재료들을 얹어 입에 넣으면 정말 오르가즘이 따로 없다.
그 달콤함을 못잊어 지난 주말에도 경희(아내 이름)와 그 곳엘 갔다.
소주 한병 반을 비울 즈음에 경희에게 친구를 부르라고하니 기다렸단듯이
손전화를 두드린다.
삽십분이 안돼서 경희친구랑 그의 아내가 환하게 들어섰다.
영수(경희 친구)와는 몇 번 술자리를 했지만 그 아내는 첨이다.
"춘희"라는 그 녀는 남편보다 한살 위였지만 무척이나 젊고 싱그러워보였다.
따뜻하게 인사를 나누자마자 술병이 늘어나는 것 만큼이나 이야깃거리가
재미나케 불어났다.
"춘희씨! 정말 사십대 맞아요? 속된말로 영계 같아요."
"꼭 대학생으로 보여요." ... 하니 " 정말요? 아이좋아라 ~ " 싱글벌글 입이
뒷통수까지 오르락 내린다.
결국 2차는 기분 좋은 춘희씨가 한방 쐈다.
춘희씨의 마라톤 동호회 회원이 운영한다는 아담한 맥주집에 자리를 폈다.
나와 띠동갑인(소띠) 그 여사장은 나보고 어떤 사이냐고 춘희씨에게 물었다.
내가 그랬다.
'춘희의 남편에 그 여자친구에 남편'이라고 하니까 순한 그 녀 함박스럽게 웃고 간다.
분위기가 곱배기로 무르익으니 맥주병이 두자리 숫자를 훌쩍 넘기고 3차를 외치고
싶은 유혹에 빠져든다. 요란스럽지 않은 가슴들을 활짝 열어둔 모양이다.
가슴으로 슬슬슬 술이 잘 빨려 들어가니 말이다.
"손가락은 길지만 피아노를 잘 못친다"는 춘희씨의 말에 그 녀의 흰 손을 잡고
내 볼에 대고 비비니 영수가 괜히 너스레를 떤다.
"어, 어, 형님.. 안되는데 .." ^ ^
내가 한마디 던졌다. " 앞으로 긴장해!" ...
모두들 꺄르르다.
아름다움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올겨울 마지막 주말..
현란하지 않은 조명아래 가슴 투명한 사람들끼리의 부라보도 이뻤지만
팔짱 꼬옥 끼고 걸어가는 경희와 춘희의 뒷모습도 내눈엔 적당히 아름다웠다.
2008.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