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언어

붕어빵의 자유

신아나키스트 2010. 3. 19. 21:08

 

그것은 희망이었다.

자아의 울림이요 자유로운  비상의 서곡이었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년 김예슬.

자발적 퇴교를 선언한 그녀의 일성에서 나는 빛을 보았다.

박노자 교수가 모처럼 웃은 이유도 알았다.(나와 같은 )

일그러진 이땅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그 작은새의 파딱임은

나의 가슴에 희망의 꽃으로 와 꽂히기에 충분했다.

 

질식할 것만 같은 사냥터(?)에서 더이상 자본이 주문하는

부품으로 남아 있기를 거부하고 자기고백을 결행한

그녀의 자기 찾기, 자유 찾기가 어찌 저리도 곱던지..

청량제가 따로 없다.

 

이땅에서 정상과 비정상. 향기와 악취. 비겁과 안비겁..

그리고 건강과 병든 것에 대한 규정이 뒤바뀌어버린 몹쓸

제도교육으로부터 탈출하는 그녀의 용기는 신선함을 넘어

부러움 그 자체다.

내가 살아온 시간의 반 밖에 안되는 갸녀린 그녀의

당돌찬 선언에 대리만족을 느끼면서도 부끄러워 해야하는

나는 누구인가?

효율과 실용, 경쟁 제일을 추구하는 현 교육정책의

희생양이 된 두 아이의 아버지라구?

 

머리로는 참교육 실천의 바탕그림에 고갤끄덕이고,

가슴으로는 저 질곡의 숲으로 내 아이들을 내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매번 일제고사라는 명박스러운 시험조차 거부 못하는

겁쟁이 아빠.

일류의 스펙을 얻기위한 경쟁구도를 펴놓은  현 교육정책을

무력하게 바라만 보는 책임없는 아빠, 행동하지 않은 비겁한 어른이

바로 나다.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들여져 살아왔다는 예슬양이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어렵게 들어간 명문대학을 자퇴하기까지

자기검열을 거치면서 얼마나 힘들어했을까 생각하면 예슬이에게도

내 아이들에게도 미안하다.

 

우리의 아이들을 죽어라고 사교육장에 내몰면서(개인적으로는 아니지만)

기어코 좀비들을  생산해내고야마는 현 제도 교육의 의 코스(대학)를

따라가라고 내 아이들에게 독려해야만하나?

거역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예슬이가 택한 자유로운 길.

상식의 꽃이 꽃 대접을 받는 건강한 길로 가라고 아이들에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오늘 저녁..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자 새 삶의 길에 오른 그녀의 고백 전문을

복사할 용기 정도는 내야겠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딸아이에게 내주며 말해야겠다.

"잘 산다는 것은, 성공한 삶이라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이지, 밖의 붕어빵 그림 따라갈 필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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