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도록 푸르른 오월이다.
세월호 뉴스에 귀를 막고 씩씩하게 출근해보지만 여전히 갑갑하다.
책상 위 종잇장들을 본체만체하고 일어섰다.
현장이나 한번 둘러 볼 참으로 안전모를 썼다.
장갑도 꼈다.
“안전!”.
요즘같이 안전이 강조되던 때가 또 있었을까?
탐욕에 무리들도, 선거판 피켓에도 온통 안전, 안전뿐이다.
어제 끼었던 장갑은 오늘도 하얀미소로 내 손을 받아 줬다.
왼손, 오른 손..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른쪽 검지손가락이 끝까지 들어가지 않는다.
여러번 잡아당겨도 장갑 끝에 뭐가 끼었는지 물컹한 저항감만 돌아온다.
“뭘까? 보드라운 거?
솜덩이가 밤새 장갑 속에 들어갔나?“
장갑을 벗고 확인해 보기로 하였다.
장갑을 뒤집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생각치도 못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꼬무락 꼬무락.
손가락 굵기만한 저 시뻘건 거.
갈라진 꼬리에 이글거리는 다리들.
앗, 지네다!
지난밤 특별한 침실로 찾아든 어른지네 임이 분명하다.
꿀잠을 자던 중 느닷없는 똥침에 놀라 꽁무니에서 불을 뿜는 모양새가 여간 위협적이지 않다.
독이 오를대로 오른 지네가 좁은 장갑속에서 머리를 돌리지 못한 탓에 상대를 공격하지
못했으니 얼마나 열불났을까.
손가락을 쑤셔 넣을때마다 꼼짝도 못하고 당하기만 한 그 놈을 생각하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돋은 소름은 금새 가라앉지 않았다.
손가락에 한숨을 불어 넣었다.
휴우~ ^^
궁뎅이 따신 지네를 통해, 위험은 늘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고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배운 하루였다.
또한 만분에 일의 확률이라도 두드리고 또 확인해서 건너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오늘 그 불청객에게 준 일격은 사실 똥침이라 볼 수 없다.
아무 감정없이 건넨 소통일 뿐이다.
내가 진정으로 분노하며 똥침을 줘야할 표적은 지네가 아니다.
나라의 재난구조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삼백이 넘는 꽃송이들을 어이없게 보낸
이나라의 머슴이 내가 벼루던 똥침의 대상이다.
국가의 모든 정책을 효율과 성장,신자유주의와 생명경시,규제완화에 맞춰놓고
비정규직 선장에게 살인자라고 책임을 떠넘겨 세계를 경악시킨 대한민국호 선장.
그가 바로 똥침을 받아야 할 대상이다.
지네의 엉덩이보다 착하지 못한 머슴은 필요없다.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섬기지 않은 교조적인 머슴은 더욱 필요없다.
이제 분노의 함성으로 똥침을 가할 때다.
지네는 자연으로 돌아갔지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애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오월 스무엿새. 화난 민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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