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언어

시위문화와 님비

신아나키스트 2009. 9. 13. 18:06

작년 이맘때 쯤인가?, 아파트내 반장 아줌마가 찾아 왔다.
우리 구內 화장장(추모공원) 건립 추진 반대 시위에 불참했기 때문에
벌금 3만원을 내라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우리 지역에 현대식 추모공원을 조성하는 것을
은근히 찬성했었고, 주민들의 일방적인 여론몰이에 동의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가당찮은 벌금을 내지 않고,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것을 선택한 적이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엔 자기 동네에 장애인 시설이나, 고아원, 추모공원...
같은 시설이 들어서면 무조건 안된다는 님비현상이 사회 전반에
팽배하게 퍼져 있다. 각 지방 자치단체와 주민들은 고속전철 역 같은
이권에는 군침을 흘리며 과도한 유치경쟁을 벌이지만,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혐오시설(주관적)에는 공익성과는 상관없이
입에 거품을 물고, 이마엔 붉은 띠을 단단히 동여매고 진격한다.


과연 저 주민들이, 성난 저 지역민들이 과거 역사가 요구했던
호헌철폐나 6월 항쟁, 그리고 역사의 격동기 때 민주화 운동의 대열에
단 한번이라도 동참 했었는 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역사 앞에 방관하지 않고 민족과, 민주, 민중을 위해 독재에 투쟁하기는
커녕, 순수한 청년학생들을 빨갱이로 매도 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6월 항쟁의 주역으로서, 또한 지금도 그 순수한 열정과 객관적인
양심을 포기하지 않은 한 민초로서, 감히 역사와 사회의 일그러진
그림 앞에 떳떳히 입을 댄다. 그리고 작금의 시위문화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않는다.


통일로 가는 지름길, 그리고 민주화와 인권회복의 과도기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이제, 역사의 주역들의 고난과 투쟁의 결과로 얻어진
환경(개선된 法과 제도)에 무임승차하여 막무가내식 목소리를 높이며
님비적인 행동에 휩쓸리는 것은 한번 쯤 생각해 볼 일이다.


어떠한 명분앞에도 폭력 투쟁은 정당화 될 수 없으며, 그것은 결국
공권력에 무자비한 탄압의 빌미를 제공할 뿐, 당면 과제를 푸는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폭력을
조장하며 원천봉쇄만을 즐겨삼는 현 공권력의 책임도 크지만...)


암울했던 격랑의 시기, 역사의 부름앞에 침묵하며 방관했을 지라도,
이젠 시위 환경이 어느정도 보장되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만큼
좀 더 지혜롭고 메시지 있는 아름다운 시위를 해봄은 어떨까?
앰네스티가 세계최고, 최대의 인권운동 단체가 될 수 있었던데는
정중하고 설득력있는 선진 시위 기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무현 자폭하라!"가 아니라, "친애하는 노무현 대통령님!"으로
시작하는 한 수 차원있는 운동을 전개할 줄 하는 지혜와 인내를 갖고 있다.


분노하는 가슴, 불타는 가슴을 거리에서의 점거와 폭력, 방화가 아닌
냉철한 이성과 상식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켜나가는 지혜를
가져줬으면 좋겠다. "나"의 입장만이 아닌 공익과 대의를 위해서...

 

 

200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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