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언어

님의 침묵

신아나키스트 2009. 9. 13. 18:10

 

대학 2학년 자취하던 시절 (군 제대후의 일)...
옆 방에 한 여자가 이사를 왔다.
30대 초반(실제 나이는 36세 정도)으로 보였던 그여자는

뚜렷한 직업이 없어 보였고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분간하기 애매한

절세의 팔방미인 이였다.
늘씬한 몸매에 수려한 이목구비. 게다가 지성이 물씬 풍기는 교양하며...
아무튼 예전 그 방에 살던 목소리가 중성인 술집여자 하고는비교가

안될 만큼 아름다운 여자였다.


나는 그여인을 편의상 아가씨라 불러줬다.
이름도 나이도 알 필요 없을 만큼 서로 부딕칠 일이 없었지만
오랜 시일 동안 이웃방에 접하고 있던 관계로 가끔씩 지나칠 때면

서로 인사도 하고, 김치도 나눠주고 하는 최소한의 인정은 나누며 살았다.
외롭게 혼자 자취하는 그 시절의 감성으로는 옆방의 그여인을 이성의 대상으로

그려보지 않았다면 거짓말 일 것이다.
나이차도 있고해서 현실적으로 친구나 애인삼기는 어려울것 같고,

그냥, 누나 삼았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몇 번 했던 거 같다.


1 년여 동안 같은지붕 아래 지내면서 그여인과의 접촉은 세번 있었다.

집앞에서 배드민턴 치고, 시내에서 탁구 한번 치고.
또 한번은 영화구경 한 후 저녁식사를 같이 한 것이 전부이다.


언제부터인가 내 가슴속엔 서서히 그 여인에 대한 연민의 정이 싹트면서

은근하게 사모하는 정이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옆 방의 숨소리 조차도 건져 올릴 것 같은 허술한 주택 구조였지만

달리 마음을 전달할 기회나 용기는 없었다.


그런데, 그 여인 주변의 사생활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거 같았다.

남성편력이 좀 있는 것인지 밤이면 뭇사네들이 틈틈이 번갈아 가며

드나드는 것이다. 부산에있는 기둥서방 말고도  사랑의 파트너가 3~4명

더 있어 보였고 밤에 들었다가 아침에 나가는 것을 보면 모두가

색깔있는 관계인 것 같았다.


깊어가는 가을밤..

옆 방에서 들려오는 원초적인 사랑의 교향곡을 생생히 들으면서도

그들의 밀애를 시기하거나 역겹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환희를 나의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그냥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승화시켜 나갔다.
"외로운 저 여자가 지금 행복하고 기쁨 가득한 시간을 갖고 있구나... "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가 행복한 시간들을 갖는 것 만으로도 감사했고,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별헤는 밤을 보내는 나의 육신은 철저하게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행복하고 평화로웠다.


그러다 어느 하루는 기어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다.
밤 늦게 한 남자친구가 들어와서 같이 자고 있는 중에 또 다른 파트너가
찿아와서 문을 여는 순간 차마 못 볼 것을 보고야 만 것이다.
문을 탁! 닫는 소리와 에이! 하는 소리..

그리고는 타박타박 걸어나가는 소리를 들었을때 나 자신이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며 그 남자한테 미안스럽던지..

내가 꼭 그여자의 입장에 서있는 거 같았다.


그런 문란한 사생활을 목격했어도 그 녀를 보는 나의 시선은 전혀
부정적이지 않았고 좋은 쪽으로만 보려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는 계속 그여자를 천사 다음으로 아름다운 여자인 줄 만 알고 가슴에
묻으며 지새운 것이다.
사랑인지, 흠모인지는 몰라도 내가 그여인을 이성으로 연모 했던 것 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인 거 같다.
그녀가 나에게 보여준 따뜻한 인심과 관심도 고마웠지만, 여인에게서
풍겨나는 지성미에 곁들어진 은은한 향수 냄새와 (?)적매력은 과히
종교적이라 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인상적이였다.


그러던 어느여름 날.
방학이라 몇 일 M.T를 다녀왔는데, 내 방과 그여자의 방 앞에 하얀갈대와
국화꽃들이 난잡하게 어지러져 있었고, 왠 군인(30대 중반)이 통로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걸 보게 된다.
이거 뭔가 옆 방에서 심상치 않은 사건이 터졌구나 싶어 주인아주머니에게
여쭈었더니, "그 여자가 엇그제 사고로 죽어서 지금 장례를 치르고

막 돌아왔다는 것"이다.
야심한 시간에 남자 셋하고 술마시고 차를 타고 오다 전보대에 충돌하는
바람에 그여자만 외상 없이 곱게 사망했다는 어이 없는 말씀이셨다.
그 직업군인은 그녀의 본남편이였고 별거중이였단다.
그녀에게 6학년 된 아들과 3학년 된 딸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아이들은 나의 손짓에 스스럼 없이 내방으로 건너와서 나와 함께 한참을 

놀다 갔다.

그 아이들은 왜 하필 그런 노래를 불러 나를 찹찹하게 했을까.

" ♪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서 계모와 언니들에게 시달림을 받았드래요 ..♬ "



사랑한다고 말 한번 건내보지 못했던 그여인.
나에게도 심심찮은 관심과 자상함을 주셨던 그여인이 순간의사고로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고 꼭 살아서
나의 제의(누나)에 선듯 응해 줄 것만 같았다.

어느정도의 감정이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그 좋은 감정이 결코 사랑이 아니라고 싸구려 취급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의 아내 이외에 정신적인 사랑을 해 본 유일한 여자.
그 녀의 영혼에 명복을 빌며 사모했노라고 고백한다.
모신 곳을 알 수 있다면 기꺼이 찾아가 국화 한송이를 올리고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님은 갔다.
사랑했던 나의 님은 갔다.
아 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네라.
제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오늘따라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200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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