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언어

거미

신아나키스트 2009. 9. 15. 12:35

 

소변기에 섰다.

 

방출하는 온천수가 폭포수 마냥 시원하다.

 

늘 하던 대로 눈이 밑으로 깔리는 순간,

어, 이게 뭐지?

소변기 바닥에 허우적거리는 물체 하나.

거미다.

 

청소년쯤 되어 보이는 거미가 필사의 탈출을 시도한다.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고....

뜨끈한 오줌을 피해 빙빙 돌다 꼬꾸라진다.

나는 나대로 요리저리 거미를 피해 중단할 수 없는 용무를 마쳤다.

 

느닷없는 폭탄샤워에 까무러치기라도 한 것일까.

 

거동이 시원찮다.

미안스러운 마음에 두루마리 화장지 두 마디를 떼어 내어 거미 앞에 내밀었다.

머뭇거리다 조심조심 화장지 위로 올라탄 고놈,

사무실 앞 화단으로 떨궈줬더니 인사도 안하고 줄행랑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장미가 끼득거리며 웃는다.

그 미소 너무 고아 나도 따라 웃었다.    ^し^

 

 

2006.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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