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언어

보바리즘

신아나키스트 2009. 9. 13. 18:31


"보바리 부인"을 쓴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 그녀는 바로 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정신에 대한 병리학적 용어가 된 "보바리즘"이란
현실적 자아가 이상적 자아를 제어하지 못하고 결국 현실의 덫에 치여
파멸하는 과대망상적 자아를 일컫는다.

시대를 초월하는 명작을 읽을 때면, 사건의 물밑으로 흐르는 인간 의식의
진화를 명료하게 감지하게 된다. 당대의 틀이라 할 수 있는 문화적,
윤리적, 경제적 구조 속에서 한 개인이 자기 몫의 부조리와 팽팽하게
맞서는 특별한 긴장과 감수성과 욕망과 고뇌가 다음 시대에는 보편화
하고 구체화하며 사회문제가 되고 그냥 生이되며 역사가 되버린다.
무엇이든 대중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애의 대중화,불륜의
대중화가 결코 뜻밖의 일은 아니다. 그것은 1850년 무렵 프랑스 루앙
인근의 시골마을 용빌르에 살았던 소설속의 인물 "엠마"가 이제는
집집마다 살고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대인의 의식과 욕망은 점점 세분화하고 강도가 높아지고 얻어낸 수명
만큼이나 길어지는 반면, 핵가족을 지향하는 결혼은 예전보다 턱없이
공허해졌다. 결혼속에 결혼이 없다 할 지경으로 자녀수도 감소했고
가사도 줄었으며 이웃도 없고 심지어 친척 왕래도 사라졌다.기하급수적
으로 늘어나는 것은 제도 속에 포로가 된 무력한"엠마"들 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랑이 결혼으로 귀결될 이유를 의심한다.
우리는 이제 좀더 솔직하게 결혼에 대해 말해야 할 책임이 있다.
결혼의 최고 이데올로기는 독점적 사랑이 아니라, 가능한 한 다정하고
무리 없는 협력적 생존이라고.

우리는 누구나 보바리즘적 파멸의 가능성 앞에서 전율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플로베르가 말했고, 내가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보바리 부인 그녀는 바로 나다" 라고.

 

 

200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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