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한 바닷가엔 파도소리만 들려올 뿐
활같이 휘어진 백사장엔 거니는 이 없이 하얀 거품만 밀려든다.
살을 에는 추위에 연인들 마저 온돌방으로 기어들었는가?
설 명절...
새벽을 달려 이제사들 고향집 문지방을 밟았는가?
여느 때면 사람사는 모양 뽑내듯 그림 좋게 나란히들 거닐어야 될
저 백사장엔 실향민 마저 꼭꼭 숨어버렸구나.
눈감아버린 동백섬 옆 광안대교의 현란함만이 악몽에서 깬 나를
현실로 인도하듯 우뚝하게 반짝거린다.
모두들 고향으로 시댁으로 가 있을 지금, 동해남부 바닷가의 밤은
이토록 속절없이 깊어만 가고 술기운에 파도소리까정 덮쳐버린
사십대 남자의 가슴엔 알 수 없는 사색의 향기가 감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평화롭게 나뒹구는 그림 또한 참으로
어여삐 어여쁘구나.
저 사람, 저 아이들이 있기에 나 또한 이렇게 호강하지 않은가.
고향으로 가는길 꺽어 여기서 휴식을 취함도 그렇거니와
이렇게 나만의 사치를 즐기는 감성 앞에 뻔뻔한 변명찌꺼리도
이만큼이나 재여놨으니...
날이새면 해운대 바닷가도 영하 7도 이하로 내려간다는데,
내일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마음 따뜻함을 엿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띄워보리라.
향기고운 나의 기운 모아 태평양으로 뿜으리라.
돌고 돌아 되돌아오는 역바람에 가족의 사랑과 행복의 열풍이
또 다시 나를 껌뻑 죽임을 아는 까닭에...
- 2004.1.22 새벽 3시 47분 메리어트호텔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