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스런 햇살 쭈욱 뻗친 주말 아침.. 여행을 떠나는 아내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머리 손질에 화장 고치고 가방을 꾸리는 모습이 여느 때 보다 행복해 보인다. 일행이 모이는 장소까지 태워달라는 부탁에 이불을 걷어차고 나갈 채비를 하는데 아내의 폰이 울린다. 같이 가는 남자친구가 아파트 앞으로 데리려 온다는 반가운 소식. 휴~ 다행이다. 늦 잠 자고 싶은 토요일인데..ㅎ 하지만 이미 잠에서 깨버렸다.
큰 가방 하나에 작은 핸드백을 겹쳐 들고 나서면서 던지는 아내의 말. "어젯밤 꿈에 돌아가신 친정 할머니를 봤는데.. 목 뒤에 혹 같이 부푼 곳을 손으로 끍고 있었고, 고개를 들어 보니 큰 뱀이 입을 쫘~악 벌리고 있었어.. 뭔 꿈이지?"... "글쎄.. " 잘다녀오라는 인사를 나누고 곧 바로 인터넷 무료 꿈 해몽을 뒤져봤다. 정확한 상황은 아니였지만 유사한 것들을 종합해보니 '유혹을 당할 괘' 정도로 나왔다. ㅎㅎㅎ 피식 웃음이 나왔다. 유혹이라? .. 하긴 띠방 카페 회원 넷 (여자 둘 , 남자 둘)이 일박이일로 여행을 떠났으니 전혀 감정과 분위기에 무감각하지는 않으리라.
아내의 뱀 꿈이 던진 이 낮설지 않은 낱말.. 그 "유혹"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건강하지도 안건강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통속어. 주변에 널리고 널린 물질적 감성적 이성적 유혹들.. 그 낱말이 갖는 비릿함과 위태로움 대신, 설레임과 건강한 감정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써내려 갈 수 있는 사람들에겐 전혀 위험스럽다거나 유혹스럽지 않은 어감 정도로만 정리가 된다.
내가 유혹의 수혜자가 되면 괜찮구, 아내가 유혹에 노출되면 위험하다는 마초적 접근에는 동의하고 싶지않다. 아내가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서 매일 보는 사람이 아닌 좋은 벗들과 시원한 술에 우정과 맛난 대화 섞으며 낙조 속에 자빠지는 향기로운 어울림은 내가 가끔씩 그리고 싶은 그림과 영 딴판이 아니기에 더 더욱 그렇다. 솔직히 아내의 여행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엔 질투보다 부러움이 앞선다는 표현이 맞을거 같다. 저렇게 가슴 맞는 투명한 친구들과 일상을 탈출하고 휘바람 불며 길을 떠나는 그들은 분명 나보다 한 수 능력있고 용기있는 자들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제도권내의 철통같은 의무만이 근본이며 고급이라 고집하는 목소리엔 귀 기울이고 싶지 않다. 그런 시덥지 않은 안주꺼리를 질리지도 않게 질근질근 되씹어먹는 남자들치고 자기 모순에 안빠지는 경우를 못봤기 때문이다. 남자는 괜찮고 여자는 어림도 없다는 식의 ..
중년의 남성들이 혼자만의 여행을 꿈꾼는게 이상하지 않듯, 열심히 일한 중년 여성들이 준비하는 여행가방에 설레임과 건강한 스릴, 그리고 그 어떤 가능성으로 가득차 있다면 이 또한 이쁘지 아니한가. 뱀의 아가리보다 더 무서운건 어쩌면 기득권 포기에 인색한 남성권력과 사회적 관념에 매몰된 삐뚤한 시선일지도 모른다.
2009.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