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언어

버자이너 모롤로그

신아나키스트 2009. 10. 18. 22:09

 

"꽃피는 자궁"이란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버자이너 모놀로그'란 연극을 짧게 소개했었다.

내가 다시 버자이너 모놀로그(보지의 독백)을 끄집어 낸 것은

아직도 대개의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잘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단어가 아직도 자연스러움속에

용해되지 못하고 자극적으로 불러지기 때문이다.

 

"보지의 독백"...

이 낱말이 왜 아직도 자극적이어야되나?

왜 호기심을 유발하는거냔말이다.

하긴 자신의 가장 소중하고 언어 듬뿍한 신체의 중요 부분을 아직도

아끼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는 죽을 때까지 입에서 꺼내서는 안되는,

그리고 자세히 알아서는 더욱 안되는 불가침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다 제 어미 자궁이 고향이며 버자이너(질) 출신이
아닌 사람이 없슴에도 어째서 자기의 고향을 아끼는 사람이 드문걸까?

특히나 사랑의 통로이기도한 버자이너를 왜 괄시하고 푸대접 하냔말이지.

'버자이너'하면 고상하구, '보지'하면 왜 천박하다는 투의 반응을 할까?

그 고운 말에 왜 인상을 찌푸려야하냐 말이다.

사회 통념상 금기의 대상이라서 그런건가?

그렇담 욕지꺼리는 하지 말아야지.

'씹 같은 새끼',   'ㅇㅇ 껍씹는 소리하네',

'국쏟고 ㅇㅇ디고 ㅇ대주고 빰맞고..' ....

얼굴이 화끈거려서 열거하기 힘들정도다.

 

남자들이 여성의 버자이너를 함부로 농락하는 것도 역겨운 일이지만

여성들 조차도 자신의 고향이자 친구 같은 꽃(?)의 메카니즘을

잘 모른다는 것이 더 문제다. 

ㅎㅎㅎ 나 보고 "그럼 넌 여자의 그 곳을 잘 아냐고? "..

나도 모른다.

그치만 남자인 나도 그 잠재된 능력과 향기로운 가능성에 대해 알려고

공부하는데 아직도 많은 여자들은 자신의 몸에 무덤덤하거나 일깨우려하지

않은 게 더 문제라는 거다.

 

2001년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시작돼 2007년 예술의전당에서의 3차 공연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에 많은 메시지와 화두를 던져줬던' 버자이너 모놀로그'...

그리고  그 배역들..

2001년 공연의 김지숙 , 2002년의 서주희, 2007년의 여배우 장영남이가

내 눈에 아름답게 비쳐지는건 그 배우들 얼굴이 이뻐서가 아니라

"보지"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객석으로 내 던지며, 세상밖으로 고개 내밀지

못했던 그 꽃잎들의 옹망졸망한 이야기들을 진솔하고도 과감하게

풀어헤칠 수 있었기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아끼며 알려고 노력하는 여자.

어찌 이쁘다하지 않겠는가.

여성주의 한의사 '이유명호님'의 말처럼 "이젠 삽입섹스가 아니라 흡입섹스다"라고

당당히 표현하는 여자..

난 그런 여자를 '건강한 여자' , '아름다운 여자'라 부른다.

여자 나이 예순이 넘더라도 여성성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의 감정과 몸을

잘 받드는 여성에게 '섹시한 여자'라는 이름표를 달아주고 싶다.

 

 

20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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