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언어

금연일기

신아나키스트 2009. 9. 14. 21:37

 

아직도 나는 담배의 필요성과 장점을 미화시키는데
인색하지 않는다.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흥분과 괴로움,고독함과
슬픈 마음을 쓸어주는 담바고!
인간관계에서의 자연스러운 접근이나 타이밍을 조절해 줄
수 있는 담배의 유용성은 지금도 인정하고 싶다.
하지만 그놈의 건강과 타인에 대한 피해 때문에..

 

나도 한때는 골초중에 골초였다.
학창시절 자취할 때는 고독의 밤을 보내면서,그리고 새벽까지
술을 마실 때는 거의 줄담배를 피우다시피 한 끽연가 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관지가 깨리낌 할 만큼 신체에도 좋지않은
조짐에 보이기 시작 했다.
그러면서도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88년 6월 15일.갑자기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에이,이왕 끊는것 완벽하고 확실하게 끝내주자!
이렇게 마음 먹고 금연에 들어 갔다.

 

곧바로 은하수 한 갑에서 한 개피만 피우다만 담배갑을 방 안
벽면 위 쪽 정면에 핀을 이용하여 부착시켰다.
담배 서너개피를 계단식으로 위쪽으로 쭉 뽑아서 언제든지 손에
잡히면 뽑히기 쉽도록 돌출시켜 놨고,누우나 앉으나 항상 눈에
띄는 30도 각도인 위쪽에 위치케하여 가장 나를 유혹하게 쉽도록
하였다.이왕 싸울려면 악조건 속에서 니가 이기나,내가 이기나
한번 멋있게 싸워보자.

 

아~~ 그런데 이거.

골초의 생체리듬이 그냥 만들어 진것이 아니지 아는가.
밥먹고 난 후. 밤에 혼자있을 때. 친구를 만나서 담배 권해올때. 술...
오만가지 도깨비들이 나를 유혹하며 뒤흔드는데, 정신이 어지럽고
입안이 바싹 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첫날밤과 둘째날은 그럭저럭 참으며 보낼 수 있었고 문제는
세째날 네째날...인데,내가 원래 돈안들고 의지로만 하는일에는 자신이
있는 터였지만.금연이 왜 이리 힘들고,많은 사람들이 왜 실패했는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가 있었다.담배가 마약과도 같다는 사실이 그전에는
실감이 안갔지만 막상 부딕쳐보니 금단현상의 참맛을 알 수가 있었다.

현기증나는 고통에 말려들면서도,담배 자체와의 전쟁보다는 나와의
싸움에 질 수 없다는 자존심과 각오로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아갔다.
처음 싸움을 걸며 룰을 만들때 저기 저 담배에 내손이 스치기만하면
나의 패배를 인정한다는 라는 약속을 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3일째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담배근처를 맴돌며
잡을까 말까 망설이기를 여러번.
가장 극심한 5일에서 7일 까지는 정말로 담배앞까지 튀어가서는 손을
부르르 떨며 담배개피를 뽑을려고 안간힘을 써봤다.

 

금연을 시도해보지않은 사람은 실감이 안가겠지만,사랑하는 사람과
3년동안을 맨 몸뚱아리로 자면서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정신적사랑만 해야하는 고통과도 같은것이랄까..
아무튼 팽팽한 긴장과 혈투가 계속되는 속에서도 이성을 잃지않고
나의 페이스대로 굿굿하게 나아갔다.
때론,떨리는 손으로 담배앞 근처까지 나아가 집게손가락으로 덮석
빼어 물고 나의 패배를 인정할려고 수없이도 바둥거려 보았다.
혼자 자취하는 환경이라 조건은 더욱 안좋아서,밤이 두렵고 집에오기가
싫어진다.
그렇지만 위기의 상황에도 끝내 그 뽀쪽한 담배를 건드리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이 담배에 손을 댄다는것은,앞으로 영원히 담배를 끊지
못하는것은 물론,이보다 더욱 어려운 시련이 닥쳐도 그 난관을 뚫고
나가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담배를 통한 상징적 투쟁은 비단 금연의 성공여부만으로 끝나는것이
아니고,자존심의 문제이기 때문에 절대 물러설 수가 없었다.

보름, 20일, 석달...
특별한 명분없는 싸움의 결과는 나의 완전한 K.O 승으로 끝났다.
정말 완벽한 승리였다.

 

이후부터 13 년 동안 담배를 입에 안대고 있다.가끔 매력에
끌려보기도하지만 끊을때의 과정이 너무 아까워서 피울 수가 없다.
나는 가끔,주변사람들에게 말한다.
섣불리 담배를 끊으려 하지마라.금연자체가 뭐,대단한것도 아니고
적적히 이용할 수만 있다면 스트레스많은 현대인에게 필요한 식품이고,
어설프게 시작해서 실패를 반복하느니 아예 시도를 하지 않는게
낫지않느냐고//.

요즘도 나는 틈틈히 악몽을 꾼다.
학교다닐때 시험보는 꿈과 담배피우는 꿈을...


200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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