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 두어 번 작은 아이랑 잔다.
내가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아들 녀석이 요청해서이다.
어제도 꼬맹이가 같이 자자고 졸라댔다.
느닷없는 황사 덕에 학교를 안 가게 된 아이가 엄마 아빠가 없는 사이 집에서
또 공포 영화를 본 모양이다.
아이와 잠자는 걸 자제하기를 원하는 아내 눈치를 보다 슬그머니 아들놈의
청을 들어줬다.
작은 아이는 자기 전에 꼭 아빠의 엉덩이를 더듬는 습관이 있다.
발가벗고 자는 아빠와의 징그러운 스킨쉽을 피해나가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인 셈이다.
어제도 이불 속에 들어오자마자 아빠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그럴줄 알고 나는 미리 속옷을 입고 있었다.
예전에 "아빠 누드잖아요. 빨리 팬티 입으세요."라는 잔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던 터라
아들하고 잘 때만큼은 꼭 속옷을 입고 자야 했다.
아이의 코고는 소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거추장스러운 면쪼가리를 벗어 던진다.
한 10년쯤 됐는가보다.
알몸 수면이 혈액순환과 숙면에 좋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후부터 시작된 누드 수면이
이제는 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런닝 한 꺼풀, 팬티 한 조각이 뭔 대수냐 하겠지만 알몸 수면과 안 알몸 수면과의
차이는 양말 싣고 자는 것과 벗고 자는 것과의 차이보다 더 큰 느낌을 받는다.
우선은 홀가분해서 좋다.
세상사와 같이 텁텁하고 복잡하게 조여오는 고무줄도 없고, 까칠한 가공물의
저항도 없다. 잔잔한 해방감을 느끼며 나르시시슴에 빠져들 수 있어서 참 좋다.
거침없는 피들의 외침 덕에 누었다 하면 스르르~ 깊은 잠에 빠져드니
어찌 알몸의 유혹을 마다하겠는가.
어디 거뿐인가.
부부간에 체온 맞추기 좋고, 교감나누기 좋은 환경에 노출될 수 있어서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편안한 스킨쉽이 갈증을 일으킬 때면, 병마개를 따지 않고 바로 마실 수 있는용이함 또한
누드 수면의 장점이라 하겠다.
예열?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잠자리 자체가 휴식과 무드의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서투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늘 평화롭고 훈훈해서 언제든지 사랑의 언어가
가능하다.
물론 이런 경우 평온을 찾은 후엔 항상 누드 전의 상태로 돌아가야만 세탁기가
씩씩 거리지 않는 다는 것쯤은 알아 두어야 하겠다.
어젯밤, 아이가 잠든 틈을 타 입었던 속옷을 벗고 자다가 아이한테 틀켜버렸다.
새근새근 자던 놈이 갑자기 나의 엉덩이를 쓸더니만 "아빠, 팬티 입으세요!"라며
쏘아붙였다.
으응, 알았어.
주섬 주섬...
개운치 않은 아침.
황사가 훑고 간 창 밖 세상엔 나의 습관을 방해한 아이의 눈 보다 더 고운
순백한 눈이 소복히 내려 있었다.
20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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