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존경하던 호치민을 얘기하려 한다.
냉전시절 미국이 수많은 젊은이를 희생시키고 막대한 화력을 퍼붓고도
실패한 대표적인 전쟁을 꼽는다면 그것은 바로 베트남전쟁일 것이다.
당시 미 국방장관을 지낸 맥나마라 조차 "개입하지 말아야 할 전쟁" 이라며
후회한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진 가장 큰 원인중의 하나는 "베트남 민족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베트남 민족주의는 역사상 숱한 가시밭길을 헤쳐온 베트남 민족 특유의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의 발로이지만 "민족의 스승" 으로 칭송받아온
"호치민" 의 사상과 지도력이 더해져 더욱 기름진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애국.애족 정신을 실천한 그는 혁명운동의 와중에서도
늘 근검절약을 국민들에게 심워주었다.
죽을 때, 평소 읽던 책들과 두벌의 옷, 몇벌의 속옷, 기워신은 신발, 낡은 모자만을
남겼다는 일화는 그의 면모를 잘 말해 준다.
비록 공산주의자였지만 그는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까지 탐독하며 민치에도
깊은 애정을 쏟았으며 정적을 숙청하지도, 자신을 우상화 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그의 인격 때문에 전쟁이 한창일 때도 그의 생일이 되면 남쪽 국민들조차
가게문을 닫고 기릴 만큼 전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오늘의 베트남이 있기까지는 그의 "3꿍" 정신이 밑거름이 되었다.
그의 3꿍 정신 사상을 요약하면 "꿍아"(함께 산다),"꿍안"(함께 먹는다)
"꿍담" (함께 일한다)이 그것이다.
지도자가 백성들과 동고동락하는 정신을 몸으로 실천할 때 어느 국민이
따르지 않겠는가.
그의 3꿍 정신은 오늘날 우리 정치문화에 비춰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2.2.15